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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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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도자립센터 작성일09-01-30 23:47 조회8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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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를 괴물로 내모는 사회









괴물들이 있기는 있다. 어떤 괴물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에서 화염병과 시너 등 위험물질을 동원해 생존권을 외치며 도심 시위를 벌이기도 하고, 또 다른 괴물들은 보이지 않아 안마 아니면 먹고 살길이 막막하니 안마권을 보장해 달라며 마포대교에서 고공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그 뿐인가. 불편한 몸에 집에 있지 기어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나와서 떨어져 죽거나 부상을 당해 스스로 문제를 일으켜 놓고는(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 시선)대한민국의 대중교통은 ‘저승길’이라며 이동권 보장을 위해 목에 쇠사슬을 감는 괴물들도 있다.




평범한 사람들 눈에 이들은 이 사회의 불편한 괴물들이며, 비정상적이고 일반적인 가치관에 반대되는 관점을 가진 위험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권력을 갖지 못한 탓에 권력을 가진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연행되거나 구속당하고 만다.




소수의 괴물은 어떻게 탄생되나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것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먼저 최근 우리 사회 최고의 괴물로 등장한 용산 철거민이다. 이들이 괴물이 되기 전에 이들은 삶의 터전에서 밥벌이를 하며 평범하게 삶을 꾸려갔던 사람들이다. 그러다 지금까지 장사를 하며 먹고 살았던 터전을 강제로 철거한다는 말에 철거 전에 임시 주거와 생계를 위한 임시 시장을 마련해 달라고 시공사인 삼성건설과 재개발 조합, 관할 용산구청에 제안을 했다.그러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그 결과 생존권이 불안해진 이들은 화염병과 인화 물질을 준비하여 철거현장을 점거했으며 경찰들은 이들을 해산시키려했다. 하지만 해산이 여의치 않자 경찰은 특공대를 투입하였고 이에 저항한 철거민 중 5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화염병과 시너를 사용하여 경찰의 진압을 방해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람을 죽게 하고 다치게 했다는 죄목으로 사법처리 대상이 되었다.




마포대교에서 목숨을 담보로 고공시위를 하는 괴물들은 어떠한가. 알다시피 우리 사회에서 시각장애인들은 특별한 직업을 갖기 힘들다. 때문에 맹학교에서 배운 전문적인 안마 교육을 통해 안마사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다수이다. 그런데 웰빙 열풍으로 마사지 산업이 돈이 될 것으로 판단한 이들이 시각장애인들의 안마업 독점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위헌신청을 했다.




이것에 시각장애인들은 고공시위를 하는 등 과격한(?) 괴물이 되었고 결국 안마권 독점 합헌이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은 시각장애인 안마업이 이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라고 보지 않고 ‘독점’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불편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목에 쇠사슬을 감는 괴물들은 또 어떠한가. 2001년 1월 22일, 장애인이 오이도역에서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했다. 장애인들은 마음대로 이동하기는커녕 서민의 발이라고 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으로부터 지하철역사에 장애인리프트 철거와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며 목에 쇠사슬을 감고, 버스타기 투쟁을 벌였다.




이 결과 이명박 전 시장은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았고 여전히 살인기계인 장애인 리프트가 작동되고 있다. 그 가운데 오이도역 참사가 있은 지 8년이 지난 지금, 또 한명의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다 떨어져 중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사회가 비정상적이며 불편하다고 믿는 괴물들은 이렇게 탄생이 되고 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하거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몰리게 되면 누구나 악이 받치기 마련이며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위험한 괴물인가. 절대 그럴게 될 수 없다. 이유는 이들에게 어떠한 권력도 주어지지 않고 있으며 권력 앞에서 이들의 존엄성은 무참히 짓밟히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괴물은 권력 없는 소수자를 괴물로 만드는 책임 회피 권력자들




그렇다면 진정한 괴물은 누구인가. 바로 권력을 가진 채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드는 인물들이다. 권력 문제의 핵심은 책임을 확실하게 지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면 일단 권력을 가진 이들은 권력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또 다른 꼼수를 내밀기 일쑤이다.




용산 참사만 해도 그렇다. 철거민들의 과격행동에 초점을 맞춰 이들을 구속해 버렸다. 심지어 배후세력으로 전국철거민연합이 있다며 이 단체를 집중 수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수사의 초점을 이렇게 철거민들과 ‘배후세력’에 맞추게 되면 경찰의 특공대 투입으로 인한 과잉진압 책임은 자연히 희석되고 만다.




또 다시 발생된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도 마찬가지다.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서울도시철도공사는 경찰에 사건접수도 하지 않고 사고 당사자를 응급처치만 받게 한 채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것에 대해 장애인 단체가 문제 삼자 종결된 사건이라며 사건을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왜 장애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 책임 있게 대답하고 해결해 주려는 모습은 왜 보여주지 않는가.




권력과 책임은 일치해야




죽음과 사고를 목격하고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늘 책임 회피에 전전긍긍이다. 누구 한 사람 나서서 ‘제가 책임지겠습니다’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권력의 단맛이 너무도 달콤하여 사람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단 말인가. 권력과 책임은 일치해야 한다. 때문에 권력의 단맛을 누리기 전에 책임을 먼저 떠올려야 하며 권력을 행사하기 이전에 봉사하는 낮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




4월 재·보궐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 전에는 봉사와 책임을 다하겠다고 큰 소리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다들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 높으신 ‘나으리’가 되어 봉사하는 권력과 책임 있는 권력은 잊혀 진 단어가 되고 만다.




무책임하게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소수자를 비롯한 서민들만 자꾸 괴물이 되어간다. 제발 희망한다. 책임 회피형 권력자들이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양산되지 않기를 바라며 서민과 소수자와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는 책임 있는 권력자가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