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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수급권, 권리로 인정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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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2-16 20:24 조회9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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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애학회와 한국 장애학회가 2년 전 한일 교류대회를 할 때에 주제 중 하나가 '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인간은 소득이 있어야 삶을 유지할 수 있다. 그 소득 보전의 방식은 근로를 통하여 얻는 방식과 다른 한 가지로 국가가 연금이나 수당과 같은 방법으로 근로에 대한 대가와 무관하게 지원하는 것이다.
근로는 권리이자 의무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 '무노동 무임금', '최고의 복지는 노동', '생산적 복지' 등의 말에서 비추어지는 것과 같이 일해야만 정당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소득보전은 부끄러운 것처럼 취급하여 왔다.
그렇다면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에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는가? 일을 하지 않고 공짜로 먹고 사는 사람은 불성실하고 부도덕한 것인가?
가정에서 돈을 벌어와야 할 사람이 그러한 임무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가정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부담이 된다면 가족으로부터 많은 원망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정에서 역할을 처음부터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남자가 가사일을 돌볼 수도 있고, 소득과 무관하게 개인적 소신을 가지고 특정한 관심사에 열중하고 있을 수도 있다.
가부장적 제도와 봉건적 가정에서는 남자는 바깥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가 집안일을 할 수도 있고 여성이 소득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맞벌이를 할 수도 있고, 아무도 소득 활동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소득이 없이 가족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이 있음에도 나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외면하고 놀기만 한다면 그것은 분명 가족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다른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거나, 노력하고 있음에도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개인의 책임으로만 보고 원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이 반드시 돈벌이의 책임자이고, 가족이 먹고 사는 선수로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가장은 가족 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가족은 함께 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족의 책임이며, 돈벌이는 근본적 책임은 아닌 것이다. 가장이 경제활동에서 가족의 입을 위하여 장렬히 전사해야 하는 군인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기초생활수급자는 낙오자도 아니고, 무책임한 사람도 아니다.
가정이라는 측면이 아닌 사회적 측면에서 사람의 가치를 소득이나 경제활동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병폐이고, 인간 계층이 생기는 딘다. 즉 부유층은 상류층이 되고 그렇지 않은 자는 하류층이 된다.
일은 돈벌이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고, 자신의 사회적 영역이며, 자아실현의 현장이다. 돈과 결부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사회적 영역이 없거나 자아실현이 없지는 않다.
한일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근로가 필수적 재화와 용역의 수단이 되면 그것은 철저한 자본주의적 사고일 뿐, 일하지 않을 권리도 있으며 근로가 인간 가치의 필수적 요소는 아니라는 내용의 토론을 하였다.
경제적 활동을 하여 내는 세금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누어지는 것은 결국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원시사회로부터 인간은 어떤 방식이든 공동 분배하여 왔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어 그것에 안주하는 것은 사회의 부담만 늘리고 영원히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수급자에게 아무리 주어도 직접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보다 많을 수는 없다. 오히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나는 경우 모든 혜택을 몰수하고 수급자가 아니면 주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안주하기 때문에 궁핍하고 아쉽게 조금 주어야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수급 서비스를 제공해 주면서 그리고 수급권이라는 '권리'를 말하면서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분명 문제이다.
그리고 아쉽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영원히 수급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조금의 여유가 있거나 최대한 절약하여 조금이라도 여유를 찾을 수 있어야 탈출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여력이 없으면 오히려 적응하고 포기하고 안주한다. 탈출할 여력을 꺾는 것은 바로 사회인 것이다.
수급권자로 영원히 살고자 한다면 그렇게 권리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 수급권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금고에 모두 들어가 사회에 환원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비일 수 있다.
그러나 생활하기 위하여 돈을 사용하면 소비가 다시 생산을 촉진하고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공헌하는 면이 생긴다. 결코 수급자는 생산 없이 소비를 한다는 생각도 위험한 것이다.
복지가 발달하면 나태해져 모두 수급자에 안주하여 사회가 막히게 된다고들 말한다. 사회가 수급자로 유인하여 안주하게 되면 그것은 분명 문제이다. 그러나 수급자로 살아야 하는 일정 계층에 대하여 최소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급자로부터 탈출하여 살도록 의지와 동력을 공급하여 주어야 하고, 탈출할 경우 불이익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탈출 여력을 주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서비스로 제공되어야 하며, 수급권도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불이익을 통하여 통제하지 않고 이익을 통하여 유도하는 건실한 사회가 이룩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