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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장애'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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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2-03-29 19:50 조회1,0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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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 '장애'

칼럼을 쓰기 위해 내가 그 동안 블로그에 써 놓은 글들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한 가지 우스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마치 이중인격이라도 가진 사람처럼 내 장애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의 일기에서는 장애를 '내다버려야 할 쓰레기'라고 욕을 퍼부어놨고, 어느 날에는 내게 있어서 장애란 특별한 것이자 '복'이라고 써 놓은 것이다.
내가 장애인이 된 지 28년. 갓 백일이 지났을 무렵 판정받은 뇌성마비라는 장애는 한시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한동안은 이 장애를 고치고 평범한 아이로 만들려고 온갖 방법을 써본 적도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것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
언젠가 TV에서 사고로 중도장애를 갖게 된 사람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장애인이 된 날부터 한동안은 죽으려고도 했었고 자신을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화도 내고 온갖 못된 짓은 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다 잊고 장애인인 자신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산다고 했다.
그 분의 인터뷰를 보며 그럴 수 있다고 수긍을 했다. 자유롭게 뛰고 운동을 하고 여행을 하던 몸에서 하루아침에 휠체어에 앉게 된 몸을 당장 인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장애가 없었던 날들이 없었는데도 여전히 내 몸을 긍정하지 못하는 것인가 싶었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장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한동안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 교회의 한 어른은 나에게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내가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은 다 신께서 너를 쓰실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위로하셨다. 신앙심 깊은 어린이였던 나는 곧장 수긍했다.
사춘기가 지나고 이성에 눈을 뜨고 현실을 보게 된 그 어느 순간부터 나의 그 믿음은 무너졌다. TV에 나오는 예쁜 여자 연예인들을 보며 섹시하다는 말이 예쁘다와 같은 말처럼 흔해질 무렵, 나는 장애가 있는 내 몸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과연 나는 예쁜가, 나는 섹시한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그러다가 내가 난생 처음으로 고백을 한 날, 그리고 거절당한 날 나를 원망했었다. 이게 다 내 장애 때문인가.
그러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글쓰기 수업 때 강사는 우리에게 자기 소개 글을 쓰라는 숙제를 냈다. 나는 글쓰기에서 내 장애를 아주 시원하게 인정하는 글을 썼다. 장애 때문에 치마를 입지 못해 내 뛰어난(?) 각선미를 뽐내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덕분에 건장한 남자의 품에 안길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고.
웃기려고 쓴 글인데 막상 발표 날 별 반응이 없어서 시큰둥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또 얼마 못 가서 굴을 파고 들어가서 우울해했다. 또각거리는 하이힐들의 향연과 나풀거리는 치맛자락들과 늘씬한 다리의 풋풋한 여학생들을 보며 투박한 운동화와 펑퍼짐한 청바지에 둘러싸인 내 다리를 비교하며 종종 들리는 미팅 소식에 더 움츠러들며 또 다시 자학하곤 했다.
장애를 부정했다가 긍정했다가 사이코마냥 둘로 분열된 자아와 치고 박으며 써내려간 옛 일기들을 보며 내 장애를, 장애를 가진 내 몸을 인정하는 일은 아직도 어려운 일이라고, 내 평생 해치우지 못할 숙제 중 하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