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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굿 닥터’와 이상(理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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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3-09-05 23:39 조회1,0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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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단언컨대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양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굳이 본성을 꼬집으라면 이상주의에 더 기우는 것이 사실이다. 이 세상, 아니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내게 현실주의 또한 안겨주었지만 내 삶에 이상(理想)이 없었다면, 얼마나 메마르고 피폐한 삶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지금의 힘듦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지 않는다. 저 넓은 세상에 미지의 무엇이 산적해 있겠지만 그래도 언제나 내일은 있다. 내일은 곧 새로움이며, 어제에 대한 망각이다. 늘 내가 가진 신앙 안에서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이것이 내 신념이기도 하지만 곧 이상이기도 하지 않나…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이상을 움켜쥐고 사는 듯한 내가 발견한 드라마 한 편이 있다. 바로 KBS 월화드라마 ‘굿 닥터’다. 연일 시청률이 올라가고 있는 이 드라마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처음에 필자는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한 사람의 장애인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언급했던 기억이 나는데 필자는 장애인 관련 다큐나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왜곡되는 부분도 있고, 속이 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우연히 재방송을 보기 시작한 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단순히 장애에 대한 어려움이나 사회 속에서 겪는 무시 풍조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천재성 자폐’라고도 불리우는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을 겪고 있지만 병자에 대한 긍휼함을 가지고, 늘 의사가 되기만을 갈망하는 박 선생은 항상 동료들과, 선후배들 사이에서 멸시를 당하지만 그 속에서도 꿋꿋이 제 몫을 해나간다.

언제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심신(心身)을 치유하고, 가족같이 아낀다. 어눌하고 투박한 말투지만,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촌철살인(寸鐵殺人) 그 자체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잊고 사는 ‘옳은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말들은 모두 따뜻한 맘 한 켠에서 비롯된다.

그의 진심을 알고 있는 아니 느끼고 있는 한 여인이 있다. 바로 윤서다. 어느 누구보다 윤서는 그를 이해하고, 이해를 넘어서 교감하고 있는 여인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폐를 가진 시온에게 무한한 힐링(Healing)을 받는다. 이미 그 힐링을 지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처럼 드라마는 두 사람의 로맨스라는 양념까지 더해져 절정에 달하고 있다. 헌데 이 드라마는 이상주의가 심해도 정말 심하다. 흔히 알고 있는 자폐(장애)는 늘 우리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주인공은 늘 서전(외과 전문의)을 꿈꾸고 있다. 민첩하고 날쌔야만 감당할 수 있는 닥터의 삶을 불가능의 대명사인 장애인이 감당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모자랄 것 없어 보이는 여인이 저(低) 지능 장애인을 사랑하고 있다. 이게 과연 가능한가? 그렇다면 불가능한 이 일을 왜 전파를 통해 보내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가치를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은 작가의 의도일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기준과 시각을 바꾸어야 함을 극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모든 것이 더 이상 이상이 아닌 현실임을…

극 중 시온의 대사 중엔 이런 말이 있다. “교수님은 절 싫어하시는 이유가 실수해서가 아니라 실수할까 봐 싫어하시는 겁니다.”

시온의 말이 옳다. 세상이 장애인을 무시하는 이유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족할 것 같아서 싫어하고, 피하고 무시한다. 함께해 보면 안다. 다 같은 존재임을. 함께 해보면 안다. 당신보다 더 나을 수 있음을…….

가을이라 그런지 눈물이 많이 흐른다. 아마 시온의 ‘옳음’에 취해서인가보다. 그리고 난 지금도 눈물 흘리고 있다. 앞으로도 이상주의자인 것이 부끄럽지 않을 듯하다.

칼럼니스트 안지수 (boxerfan@hot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