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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 예산집행 지연 경기부양 <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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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도자립센터 작성일04-12-17 13:09 조회1,4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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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산안 처리가 올해도 여지없이 파행 속에 묻혔다. 여야의 힘겨루기가 계속되면서 법정 통과시한(12월2일)을 이미 보름이나 넘겼다. 해마다 반복되는 정치권의 고질(痼疾)이지만 특히 올해는 침체된 경기상황과 맞물려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보통때 40대60 정도인 상반기, 하반기 예산집행 비율을 내년에는 55대45 정도로 가져가려 했는데 예산 확정이 늦어져 어려움이 커졌다.”고 말했다.









■ 발목잡는 늑장 예산









보건복지부는 내년 1월부터 아동·노인·장애인 등 각종 복지시설의 증·개축(2005회계연도분) 작업에 들어가야 하지만 여태껏 공사비용, 건설업체 선정방식 등 실행계획조차 마무리하지 못했다. 새해 예산규모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예산배정 등과 관련한 지침서도 아직 못 보냈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기부양을 위해 내년 상반기에 예산을 최대한 많이 집행하는 게 범 정부적인 방침이지만 이대로라면 돈을 쓰고 싶어도 못쓸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재정 조기집행>이라는 정부 거시정책에 큰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경기부양 수단이 마땅찮은 상황에서 정부소비를 앞당겨 실시하는 것은 내년 상반기 핵심 경기부양책. 정부는 내년 예산(국회 제출안 기준 일반회계 131조 5000억원)의 55% 이상을 상반기에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개인·기업의 소비와 투자가 당분간 살아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일단 정부가 돈을 실물경제에 최대한 많이 쏟아부어 내수부양의 촉매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국회에서 예산안이 묶이면서 각 부처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노동부의 경우 근로복지공단, 산업안전공단 등을 통해 연말까지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의 세부계획과 예산내역을 확정해야 하지만 예산규모가 정해지지 않아 당장 1월1일부터 집행이 쉽지 않게 됐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부의 사업은 고용확대 등 경기부양책과 직결돼 있는 데다 취업훈련 등 시간에 구애받는 것들이 많아 예산의 조기확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도 지자체와 함께 벌이는 지역진흥사업과 연구·개발(R&D) 사업의 조기집행이 사실상 물건너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조달청 관계자도 “정부가 물자구매 등 예산집행을 연초에 집중하라고 하지만 현재로서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국회가 지난해 12월30일에야 의결했던 올해 예산의 경우, 곳곳에서 집행에 차질이 빚어졌다. 산업자원부 <이공계 미취업자 현장연수> 사업의 경우, 예산확정 지연으로 사업공고와 연수기관 선정이 늦어져 3월 말에야 겨우 연수생을 선발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올 1·4분기 현장연수생은 전체 대상 6000명의 1.4%에 불과한 85명에 그쳤다. 과학기술부의 핵심연구개발 사업도 연구과제 공모 및 평가·선정 지연으로 1분기에 단 한건도 사업선정을 하지 못했고,2분기에야 겨우 연간목표 대비 10.3% 집행이 가능했다. 그나마 실제 지원협약 체결과 연구비 지급은 7월 이후에나 이뤄졌다. 농림부의 밭기반 정비 등 6개 사업도 지난해 12월에 끝났어야 할 부처협의가 올 1월 말에야 겨우 마무리되면서 2월에 집행이 시작됐다.









답답하기는 지자체들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 지원금(지방교부세, 정부보조금 등) 규모가 확정돼야 이를 토대로 최종 예산을 짤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자체 예산에서 중앙정부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5%대와 21%대에 불과한 서울시나 경기도와 달리 재정자립도가 낮은 곳들은 더욱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현재 전국 250개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40∼50% 수준에 불과하다. 전북은 23%, 전남·경북은 35%대로 특히 낮다.









최근 광역지자체들은 지난 9월 정부가 올린 예산안 항목을 기준으로 새해 예산안을 짰다. 지자체 예산안 확정시한이 광역은 12월17일, 기초는 12월22일이어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북 도의회 의원은 “확정된 예산안이 아니기 때문에 심의를 정밀하게 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예산의 추가편성이 불가피해 사업별로 자금이 남거나 모자라는 현상이 생길수 있다.”고 말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중앙정부에서 정확히 얼마를 받게 될지 불명확하니까 나중에 추가경정예산을 전제로 본예산을 편성하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연초에는 사업비용을 아끼다가 나중에 추경이 반영되면 연말에 대규모로 돈을 몰아서 쏟아붓다보니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어렵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올해 복지부 소관인 사회복지관 시설 개보수 비용은 국회 심의과정에서 50억원이 추가돼 지자체들이 추경으로 반영했으나 당초 계획에 없었던 탓에 신속한 집행이 불가능했다.









계명대 윤영진(행정학) 교수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재정의 역할이 특히 강조되는 내년에는 예산의 조기집행이 주요 정책수단이 돼야 하지만 국회에서 제동이 걸려 있다.”면서 “국회가 말로만 민생을 외칠 뿐 정부의 대응력을 제한하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균 장세훈기자 windsea@seoul.co.kr









■ 되풀이되는 악습









지난 1992년 14대 국회 개원 이후 올해까지 13년간 예산안이 정상적으로 통과된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법정 예산안 처리시한을 맞춘 적은 그동안 5차례. 그러나 92,97,2002년에는 대통령 선거 때문에 국회 일정이 단축돼서 그런 것이었고,94년에는 파행 끝에 여당단독으로 처리됐다. 제대로 됐던 적은 95년 한 해밖에 없었던 셈이다.









최근 들어 정쟁으로 얼룩진 예산안 표류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2000년,2001년,2003년에는 처리시한을 넘긴 것은 물론이고 정기국회 회기 안에도 끝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무려 한달 가까이 더 끌다가 해가 바뀌기 직전인 12월30일에야 겨우 통과시킴으로써 사상 초유의 준(準)예산(예산이 확정되지 못한 채 회계연도가 바뀔 경우, 정부가 직전 연도 예산에 준해 집행하는 잠정적인 예산) 편성사태 직전까지 치달았다.









시민단체인 함께하는 시민행동 정창수 국장은 “14대 국회 이후 예산안 심의·조정에 걸린 시간은 평균 10여일이었고 94년에는 이틀 만에 모든 게 끝나기도 했다.”면서 “예산안 내용을 꼼꼼하게 파악하다 늦어지는 게 아니라 예산과 전혀 상관없는 소모적인 정쟁을 하다 막판에 부랴부랴 통과시키는 모습에서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행 헌법과 예산회계법에 따르면 정부는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10월2일)까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하고 국회는 30일 전(12월2일)까지 이를 의결해야 한다. 지방자치법상 광역단체는 회계연도 개시 15일 전(12월17일), 기초단체는 10일 전(22일)까지 내년 예산안을 확정하게 돼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예산심사 지연 해법은









국회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을 넘기는 일이 연례 행사처럼 이뤄지고 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보다 여야간 정쟁의 볼모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다수 예산 전문가들은 예산 심사의 부실화를 막고 전문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원희(한경대 교수) 경실련 예산감시위원장은 “예산 심사가 경제적 합리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정치적 타협의 도구가 되고 있다.”면서 “특히 의원들이 예결특위와 다른 상임위 활동을 병행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지고 지역구 사업을 우선적으로 챙기는 구조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영진 계명대 교수도 “정부가 예산을 편성, 집행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기 위해서는 예결특위의 상임위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예산 요구기관 및 수혜집단 등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예산 청문회제도를 도입하면 국회의 독단적인 예산 심사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새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할 경우 정부는 전년도 예산에 준해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준예산제를 운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예산 집행실적이 전무한 신규사업 등은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마련한 예산을 의회가 우선 통과시켜 가집행토록 한 뒤 추후 심사를 통해 최종 확정하는 영국의 <잠정예산제>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국회의 양대 기능 가운데 한 축인 예산심의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 서원석 박사는 “예산 심의를 충실하게 하기 위해 상임위의 예비심사와 예결특위의 종합심사 시기를 법정화하는 통과시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의원들이 이를 따르려는 노력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다.”면서 “제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의원들 스스로가 법 존중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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