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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함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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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도자립센터 작성일08-09-16 21:49 조회8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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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한 세상을 그리면서









한빛이에게 생긴 말버릇이 있다. 아무에게나 ‘엄마’라고 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제는 누구든 ‘야!’, ‘너!’하면서 장난질이다. 하지만 어른들인 상대방들은 그것이 장난인지 모른다. 기분 상하는 경우도 있고,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호칭으로 여겨 언짢아하는 경우다.




특히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난감한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이 있는데 그렇게 불러대면 아이들이 따라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그것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틀어서 생각을 한다면 금방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 늘 그것이 싫은 것이다. 반 아이들은 한빛이에 대해서 잘은 몰라도 단편적인 이해를 하고 있으며 한빛이의 행동이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 보이는데 어른들의 생각은 늘 자신의 관념에 아이들을 가둬놓고 그 안에서 판단하려 한다.




또 하나는 과도한 스킨십이다. 덥석 안겨서 뽀뽀를 해대고, 목을 감고 놔주지 않으니 이것 역시 난감한 모양이다. 한 번은 봉사자의 가슴을 덥석 잡는 통에 깜짝 놀라며 뒷걸음을 치는데 나도 난처함을 느낀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면서 학교에서는 행동수정을 하려 들고, 복지관에서는 장난질인 줄 알고 별스럽지 않게 여기는 현상이 벌어진다.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일까?




집에서는 그 모든 장난을 다 받아 준다. 이미 시작이 내게서 부터였으니 딱히 혼을 내거나, 행동수정을 할 이유가 없다. 아이들은 그런 한빛이를 보면서 한 걸음 다가오기도 하는데 어른들은 장애란 것을 단순하게 장애로 받아들이기에 대하는 방식이 아이들과는 다르게 나타난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제 세상만 가지고 살아가는 녀석에게 어떻게 어울림을 알려줄까? 최대의 관심사고, 최고의 목표라 하겠다. 어른들이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바로 실현 가능한 것이라 여기지만 모두가 내 마음과 같지 않음이니 어찌하기 못한다. 그렇다고 그것을 남 탓 하면서 지내지도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의 일상에서 지켜야 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장애라는 부분은 미미한 존재이기에 강제하거나 부탁하는 투로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기다릴 뿐이다. 누구나 변한다는 사실만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아이가 얼마나 버티면서 지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한빛이의 일상은 변함없다. 어김없이 진행되는 모든 것들이 하루도 다르게 나타나는 일이 없다. 그런 속에서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변화를 줄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것이든 변화를 만들어 주려 애를 쓰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상처를 받으면서 지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면 그런 상처는 다 안고 가겠으나 충분히 변하고, 바뀔 수 있는 상태에서 상처를 안고 가라한다면 그것은 거부하겠다. 어울림은 간단하다고 여긴다. 재단하지 않고, 계산하지 않으면서 마음으로 다가선다면 당장이라도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어떤 의미도 두지 않는다. 그저 서로 가슴과 가슴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웃음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세상은 그래야 살맛이 난다. 그런 세상을 위해 오늘도 기다린다. 최선은 아닐지라도 열심히 노력하면서 기다린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편견의 시선이 아니라 따뜻함이 묻어나는 그런 시선 속에서 편안하게 지내게 될 그런 날을 위해서…….









칼럼니스트 최석윤 ( hahaha63@par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