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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경험하는 친구가 우리 편 돼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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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명도자립센터 작성일08-10-14 18:07 조회8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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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장애 우리가 없애고




진정한 통합현장 바로 이것이다









미국 어느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체육시간이었다. 이날 활동의 주제는 발야구이다. 발야구를 하기 위해서는 두개의 팀이 필요했다. 주장이라고 여겨지는 두 아이가 나와서 소위 가위바위보를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다운증후군인 친구 브라운(Brown)를 서로 자기 팀으로 먼저 데려가기 위하여 주장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위바위보를 하면 제일 잘하는 친구를 먼저 뽑고, 제일 못하는 친구를 나중에 선택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 왜 그러지? 룰(Rule)이 다른가?




드디어 팀원이 정해지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브라운이 4번을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이러한 일이 벌어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브라운이 타석에 들어서자 모든 친구가 한목소리로 외쳐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브라운은 공을 발로 찼다. 하지만 공은 파울라인 안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 때, 모든 선수들은 뛰어라(Run! Run!)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브라운은 최선을 다해서 뛰었다. 1루를 지나 2루로, 3루를 거쳐서 홈 베이스를 밟았다. 모두가 환호성이었다. 브라운에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가득했다. 이제야 알았다. 왜 브라운을 서로 자기 팀으로 데려가려고 애를 썼는지를.




장애를 경험하는 친구가 우리 팀이 되어야, 우리 팀이 이긴다는 상식적인 규칙을 가지고 이들은 경기를 한 것이다. 이들의 모습 속에는 장애(障碍)를 없애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히려 장애(長愛) 즉 오랫동안 사랑하는 친구의 관계를 증명해 주었다. 이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통합 현장을 보게 되었다.




장애인은 모든 사람의 친구이다. 장애인이 있기에 도리어 이익이 돌아오는 사회. 누가 만들 것인가? 장애인을 선수 명단에서 제외하거나 장애인을 경기의 참관자로만 만드는 사회와 장애인을 함께 뛰어야 할 선수로 인정하고 장애인을 경기의 주역으로 만드는 사회. 어느 사회가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사회인가? 어느 사회가 정상화된 사회(Normalized Society)인가? 어느 사회가 통합된 사회인가?




이제 패럴림픽도 막을 내렸다. 장애인 체육대회가 개최되고 있다. 가을에는 모든 학교에서 운동회가 개최된다. 모든 대학에서는 축제 대신 체육대회가 열린다. 운동경기가 전개되는 모든 장소에 장애인으로 인하여 함께 즐거워하는 축제가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등학교 6학년 때, 소아마비 학생들 5명에게 배구공을 주시면서 "너희들끼리 재미있게 놀아라"라고 하신 선생님의 배려도 통합교육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또 하나의 장애를 만들고 만 것이다. 배려( courtesy, generosity)도 지나치면 분리가 되고, 차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함께하는 배려는 아무리 지나쳐도 지나침이 없다. 장애(障碍)를 없애고, 장애(長愛)가 넘치는 사회,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가 아닐까?




한 가지 더! 장애범주 안에서 또 다른 장애를 만들어가는 일도 이젠 깊이 유념해야 할 때이다.